기말페이퍼_박희석&최한은주_[생기있는 집단지성의 마을을 꿈꾸며]

[생기있는 집단지성의 마을을 꿈꾸며...] : 2007년 2학기 지식정보사회학 기말레포트
There are six billion people on this planet,
But you're the only one that my heart's beating for.
문화학과 최한은주 ? 사회학과 박희석
1. 집단지성을 만들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 수업은 인터넷 기술이 도입된 25년 이후 기술과 문화, 그리고 사람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 하는 수업이다. 마침 첨단을 가는 분들이 기꺼이 우리 수업을 위해 와주시기로 하여서 이번 학기는 아주 뜻 깊은 시간들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 조한, 첫 번째 강의노트
2007년 9월 5일, 연세대학교 사회학과에서 ‘지식?정보사회’라는 교과목이 개설된 연희관 404호는 학기 초의 어수선함과 수업에 대한 기대감이 맞물려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하자센터와의 원격강의, 전 강연 촬영 및 수업 내용을 바탕으로 한 책 출간 등의 새로운 시도들에 대한 조한의 설명은 학생들에게 호기심과 아울러 부담감(?)을 유발시키기에 충분했으리라. 그나마 다행이도 개강에 맞춰 발간된 ‘인터넷과 아시아의 문화연구’에 대한 서평과제를 통해서 우리들은 이 수업에 대한 조한의 의도를 조금이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
조한은 머리말에서 그동안 진행되어 왔던 인터넷 상에서의 무수한 실험들이 한 ‘사이클’을 돈 것 같다는 느낌을 토로한다. 한국 사회에는 2002년을 전후로 “산업화에는 뒤졌지만 정보화에는 앞장서자!!”라는 모토와 ‘사이버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던 시민사회의 열망’이 극적으로 결합하여 만들어 냈던 놀라운 모습들이 분명 존재했다. 그러나 이 판들이 급속히 시장에 포섭되어 가면서, 한 때 지녔던 장밋빛 미래에 대한 괴리감은 창조적이고 자발적 활동을 즐기던 네티즌들을 점점 숨어버리게 만들었다. 우리들이 이런 현실을 어느 순간 당연하고 익숙한 사회현상으로 받아들일 즈음, 조한은 전지구적 신자유주의 질서가 만들어냈던 그간의 심층적 변화와 지형도를 꼼꼼히 관찰한 결과를 내놓으며 우리에게 잊고 있던 그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초반 쪽글에서는 학부생들에게서 자신의 현재 상태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조바심을 새롭게 느끼고 그 감정들을 토로하는 글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누가 젊은이들을 겁쟁이로 만들었나. 10년 전 IMF당시 제일 큰 타격을 입었던 우리의 부모님들은 그 시련을 통해 세상에 대한 불신과 돈에 대한 믿음을 고스란히 자식들에게 전달했다. (...)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고 불안해 하기는 하지만,? 자기가 먹고 사는데 드는 비용이 구체적으로 얼마인지 생각해 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가진 것을 희생하면서조차 이루고 싶은 꿈이 없기 때문이다. 꿈이 있으면 귀찮고 힘드니까. 자기 스스로 계획하고 시간을 투자하고 공부해야 하니까. 사실, 고등학교 때 입시 공부하는 것처럼 주어진 것을 그대로 따라가는 공부가 제일 쉽다. 마찬가지로 남들 하는대로 학점 관리하고, 자격증 공부하고, 영어 공부하는 것이 마음 편하다.”? <시완, 4번째 과제>
“그간의 인터넷문화의 흐름을 훑어보면서 놀란 점이 여럿 있다. 먼저는 인터넷과 나는 사실 별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인터넷의 문화가 변화하는 흐름 속에서 나도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고 있었구나 하는 점이었다. (...) 또 하나 놀란 것은 시장이 인터넷이 미친 영향이다. 무엇을 하든지 학점과 취업이 기준이 되어버렸다. 수업을 듣는 것도 학점 잘 주는 교수님 쫓아가고. (...) 실제로 만나는 07학번 후배들의 입에서 나오는 ‘엄마가 안 된데요.’라는 말들. 방학이 되면 방학계획을 세우고 예산서를 짜서 아빠에게 제출하는 그 아이들을 보면서 어안이 벙벙해지곤 한다.” <새롬, 4번째 과제>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에 떨며 취업시장에 대한 스트레스 속에서 주어진 ‘스펙’1)만을 만들어가던 많은 학생들이 어떻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더 나은 삶의 방향을 함께 고민하는지에 대한 과정을 찾아낼 수 있어 뿌듯했다. 그리고 점점 나아지는 과제와 깊어지는 사고의 모습을 보며 느꼈던 생각들이 나아가 이 에세이를 쓰게 된 동기였음을 미리 밝혀둔다.
우리는 짧다면 짧은 이 과정에서 벌어졌던 많은 미시적 행동들과 이들의 네트워크들이 만들어 낸 결과물들에 놀라움을 느꼈고, 고심한 끝에 이런 모습들이 ‘집단지성’을 구축하는 하나의 프로젝트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구현해 내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 글에서 집단지성에 대한 학술적 설명은 생략하겠지만, 이미 집단지성에 대한 논의는 얼마 전부터 지속되어왔고 많은 학자들은 집단 지성이 어떻게 인터넷 공간에서 더 일상적으로 발휘될 수 있는지에 대한 조건적 탐색을 수행해왔다. 특히 집단 지성 연구의 선구자격인 피에르 레비는 집단 지성에 대해 ‘획일적 전체성보다 특이성들에 가치를 부여하고 새로운 보편성들이 부상할 수 있게 하는 장치’라고 정의했다.2)??
하지만 먼저 분명히 해 둘 점은 이 자리에서 우리가 집단지성의 당위성이나 필요성을 역설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기억한다. 2002년 광화문에 모인 수많은 ‘붉은 악마’ 들과 촛불 집회에 모였던 그 많던 ‘참여군중’들을 말이다. 그리고 불과 5년 남짓한 시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다시금 되물어 본다.
? 우리 사회는 집단지성을 만들어 내고 있는가?
??우리 사회는 ‘smart mob’3) (참여군중)을 만들어내는 ‘선순환’ 구조의 사회인가?
??아니, 설령 작디작은 마을들에서 그들이 힘겹게 만들어냈던 소중한 씨앗과 결과물들을? 찾아낸다 할지라도 그들의 열정과 능력에 신뢰를 보내줄 수 있는 사회인가?
학부생들의 수업을 관찰하며 우리는 이 질문을 던져보았고 비록 거창하지는 않지만 유의미한 결과들을 찾아내었다. 우리의 문제제기에 동의하는가? 그렇다면 이제부터 마음을 열고 이 글을 읽어주면 된다.
2. 인터넷 키드와 88만원 세대 - ‘새로운 배려’ 에서 벗어나 ‘새로운 언어’를 찾다!
그간 신세대들을 지칭하는 용어는 곧잘 바뀌곤 했지만, 이번 수업에서 이들을 통칭할 수 있는 단어는 ‘인터넷 키드’와 ‘88만원 세대’일 것 같다. 수업 첫 시간의 과제였던 ‘4컷 만화로 자신의 인터넷 사용기 표현하기’를 통해 우리들은 이들이 PC 통신의 끝자락에 걸쳐 있었고 이후 ‘한메일 - 다모임 - 네이버 - 싸이월드’ 로 이어지는 한국의 Social network System을 대부분 따라 경험했던 세대임을 알 수 있었다. 이들은 인터넷을 자신들의 ‘가장 훌륭한 장난감’, ‘혼자 놀기의 끝없는 장소’로 인지하고 있었지만 한편으로 ‘점차 재미가 없고 귀차니즘에 빠진다’, ‘가는 곳만 간다’라는 글들이 많았다.
“초등학교 5학년. 당시 다니던 학교가 '인터넷 어쩌구 시범학교'로 덜컥 지정되었고 학교에서는 갑자기 교과과정에 '컴퓨터'를 추가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교육과정도 확립되어 있지 않던 시절인지라 선생님은 책상에 그저 멀거니 앉아 있었고, (...) 중학교에 막 입학할 즈음 집에 컴퓨터가 들어왔습니다. 다행히도 인터넷 시스템만은 차근차근 업그레이드가 되어 왔습니다. (..) 저는 트렌드니 하는 것들을 잘 따라가지 못 합니다.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는 데도 별 재주가 없구요. 웹툰 한참을 들여다보는 게 고작이고, (...) 작년에 시작했던 블로그질은, 제 자신의 나태함과 얕음, 무기력증 등등의 이유로 오래가진 못 했습니다. 그렇게. 눈팅이 고작인 인터넷 생활습관이 쭈욱 이어지고 있습니다.”?? <용락, 첫 번째 과제>
다음으로 88만원 세대4)는 최근 한국의 젊은 세대 간의 불평등을 분석한 동일 저서에서 나온 키워드로 ‘상위 5%만이 대기업이나 한전 등의 공기업 직원, 5급 사무관 이상의 고위 공무원이 될 수 있고, 나머지는 월평균 88만 원(세전소득)의 급여를 받는 비정규직의 삶을 살아야 하는 지금의 20대’를 지칭한 신조어로 정의되어 있다. 일본에서도 취업이나 내 집 장만을 포기한 채 질 낮은 일자리와 저임금에서 벗어나지 못함에도 공부와 일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하류지향’5)적 흐름에 대한 많은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갈수록 좁아지는 취업문과 이에 대해 끊임없이 ‘창의성’과 ‘준비된 마음가짐’을 요구하는 사회, 그리고 이에 대해 대학생들이 받고 있을 심리적 부담과 스트레스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인터넷이라는 판을 깔아주면 다들 신나게 떠들 줄 알았는데 다들 조용하다. 왜? professor가 말하는 ‘불안’ 때문에. 참여가 왜 중요한지는 지식정보사회 수업 수강신청 했으면 대충 다 알만한데, 이놈의 사회가 너무 정신없게 만든다. 나도 이것에 자유롭지 못하다. 이 죽일 놈의 사랑……이 아니라 사회.”? <재홍, 6번째 과제>
“88만원 세대를 읽으니 비로소 사회의 현실이 내 현실이었다. 20대에게 펼쳐질 현실의 암담함과 그 대안을 제시하는 책이었기에, 비로소 사회와 나를 연결할 수 있었다.” <시완, 5번째 과제>
하지만 수업을 청강하며 이 두 가지 특성 외에도 약간 독특한 점들을 느낄 수 있었다. 개인들로 보면 너무나도 영리한 아이들인데 강연을 듣고 질문하는 모습이나 쪽 글에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태도 등에서는 손쉽게 이분법적 편견이나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나온 비판의 감정을 드러냈던 것이다. 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학생의 글을 보자.
“특히 특강 내내 내 눈을 계속 붙잡아 둔 것은 학생들의 질문이 이어질 때마다 언뜻언뜻 스쳐지나가는 함종민NSO의 오묘한 표정이었다. (...) 씁쓸한 미소가 찰나에 스쳐가지만 계속해서 감정의 여운이 맴도는 그 표정. 그도 그럴 것이 학생들의 질문이 대부분 ‘네이버는 왜 욕을 먹나요?’ (비판 받나요도 아닌....) ‘욕을 안 먹기 위해서 무엇을 준비하고 있나요?’ 와 같은, 결코 ‘우호적’이지 못한 질문들이었기 때문이다.”? <조형래, 10번째 과제>
?때문에 우리는 이 두 가지 특성 이외에도 이들의 ‘세대적 동질성’을 이해할 수 있는 또 다른 키워드들이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속성들은 역으로 어떻게 4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에 학생들이 스폰지처럼 빠르게 그들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새롭게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획득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증거가 될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이런 현상들에 대해 먼저 우리는 오히라 겐의 저서6)를 통하여 이들이 ‘새로운 배려’, 즉 상대의 마음을 열고 공감하고 보듬어주기 위한 ‘과거의 배려’가 아니라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기 위한 ‘새로운 배려’의 경향을 지닌 세대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앞선 ‘하류지향’의 저자 우치가 교수는 이를 ‘소비 사회와 소비자 마인드’에 길들여진 젊은이들의 특성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개념은 ‘쿨한 배려’라는 것인데, 이는 ‘상대방을 배려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이 배려인지를 계산하는 것’이다.
예컨대 젊은이들은 가족들이 나의 문제로 걱정하지 않도록 대부분 자신의 문제를 비밀로 하는 배려심을 보인다. 그래도 가족이라는 느낌이 들도록 하기 위해 가벼운 주제로 가족들과 대화한다. 오늘 뭘 입고 갈지, 오늘 헤어스타일 어떤지에 대해서만 가족들에게 조언을 구한다. 하지만 학원들 다니고 싶다고 부모님에게 말하면 스스로 학습을 해결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실망할까봐 말하지 않는다. 대신 부모노릇을 한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는 꼬박꼬박 용돈을 '받아준다’.
오히라 겐도 저서에서 밝히고 있지만 이것은 시대가 변하고 배려가 풍부해짐에 따라 그 방식의 변화가 생기는 것이지 그 호오의 잣대를 일방적으로 들이댈 수는 없다. 하지만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지 않고 머리로 상황을 판단하는 배려는 상대의 진심을 알지 못하고 실망하고 오해를 만들어 서로 상처를 주기 쉽다.
그들의 쿨함은 끊임없이 “당신의 지식이 가진 깊이를 보여주세요! 설령 더 깊은 통찰력을 나에게 보여주어도 난 놀라지 않는 ‘척’ 할 자신이 있어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수업이 중반을 넘어서고 점차 서로의 글들과 고민들을 공유하면서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학생들이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이 특징은 앞서 언급했지만 이들이 어느 순간 자신들만의 상황과 처지를 이해하고 그에 대한 문제제기와 그것을 표현할 ‘언어’를 가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를 우리는 ‘티핑 포인트’의 개념으로 이해했고 구체적으로는 7번째 수업이었던 노정석 대표의 강연을 그 시기로 잡았다.?
독감 바이러스를 가진 한 사람이 많은 사람을 전염시키듯 사회적 유행이나 변화 또한 특이한 개성과 사회적인 관계망을 통해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간다. 이러한 ‘극적인 변화가 시작되는 순간’을 이 책7)의 저자 말콤 글래드웰은 티핑 포인트라고 명명했다. (이 개념은 경영학과 접목되며 주목 받았지만 애초 저자는 사회학적 측면으로 해석하고 소개했었다. )
어찌됐든 말콤 글래드웰은 상호작용하는 사람들 사이의 네트워크를 통해 영향력이 퍼져나가는 방법을 ‘아이디어 바이러스’ 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즉 아이디어나 소문, 범죄의 증감을 비롯한 온갖 종류의 영향력이 사회 안에서 바이러스와 같은 방식으로 확산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티핑 포인트는 세 가지 규칙, 즉 1) 소수의 법칙 2) 고착성 요소 3) 상황의 힘 중 최소 하나가 발휘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 특성들 중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는 상황의 힘’이라는 요소에 주목했다. 인터넷 키드와 88만원 세대라는 시대적 상황과 이것이 사회적 현상과 맞물리며 생겨난 ‘동질감’들이 이들 간에 더 빠른 공유와 연대를 가능케 하는 ‘촉매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가정을 해본다.
태터앤컴퍼니의 노정석 대표는 기업의 상업적 이윤을 추구하면서도 ‘공유’라는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태터툴즈의 사례를 설명하여 큰 호응을 받았는데 미리 학생들의 글들을 읽고 왔다는 사실을 밝혔던 그는 재치 있는 유머로 그간 가지 사이트의 팽배했던 ‘인문학도의 우월감’에 대한 새로운 사유의 방향을 제시하고 그 접점을 찾아보는 시도를 보여주었다.
“시작하기 전에 아마 여러분과 제가 다른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약간 들고요, 제가 한 가지 질문을 할께요. 여러분 혹시 정의 영어로 뭐예요? justice죠? 저희 세상에서는 definition 이예요. 질문했을 때 justice라고 답하면 문과생이고 당연히 definition하면 공대생이거든요. 저는 20넘게 그 안에서 살았고 이런 특성이 오늘 강연에서는 오히려 여러분에게 독특함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노정석 대표 강연 중>
?“처음부터 의도한 자리는 아니었지만, 국문학을 잔디밭에서 기타 치는 학과라고 한 데서 싸움이 붙은 것이다. (..) 아무튼 국문학을 잔디밭에서 구해내고 공학을 공돌이의 자리로 복귀시키기 위한 몸부림은 그렇게도 처절했으니. 철없는 것들의 막장 토론을 끝낸 것은 나의 마지막 멘트였다. ‘컴퓨터, 그거 그래 봐야 가전제품 아니냐? 너희는 가전제품 작동법을 무슨 4년 동안이나 배우냐’ 이 친구 표정이 뭔가 멍 한 것을 보고 저 말이 카운터 펀치였나 싶었다. 학점은 만날 비리비리 싸고 다니면서 국문학이 뭐가 그리 좋다고 열변을 토했는지 모르겠지만 (...)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친구의 멍한 표정은 패배의 시인이 아니라 천길 모르고 무섭게 치닫는 나의 무지함에 대한 경탄이었던 것 같다. 나는 당시만 해도 justice의 철옹성 안에서 절대 나오려고 하지 않는 소인이었던 것이다.”? <형래, 7번째 과제>
때문에 강연 이후 쪽글들을 보며 우리는 생각보다 이 구분에 대한 지적이 학생들에게 재치 있는 위트를 넘어 새로운 사유의 공간을 마련해주었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었다. 대다수의 학생들은 ‘Definition'과 ’justice'의 구분법에 자극을 받았다고 표현했고 이후 과제물에서도 이 구분법을 응용한 글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우리는 이 사소한 ‘서두’의 순간이 우리 수업에서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생각해보는 ‘티핑 포인트’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고지를 넘어선 순간 이제 학생들은 본격적으로 집단 지성을 만들고 경험에서 우러난 ‘생기 있는 지식’들을 만들어 나갈 준비태세를 갖추게 되었다.
“오는 연사분마다 미디어의 경제학적 접근, 네티즌을 대상으로 한 포퓰리즘적 사고를 내비쳤는데, 나는 노정석 대표가 말하는 IT업체의 ‘현실’에 대해 모른다. (..) 서로가 서로의 편에 무지하다는 전제는 각자가 각자의 편에 안주할 좋은 기회가 된다. (...) 나라 말아먹는 주체가 기술 모르고 지껄이는 문과 출신인지, 뜻도 모르고 기술만 휘두르는 이과 출신인지를 따지는 일은 그래서 무의미하다.” <대현, 7번째 과제>
“그의 잘못이 아니다. 웬걸? 그는 잘하고 있다. 나는 오히려 그가 관념적이지 않고 실질적인 효과에 주목하고 있어서 좋았다. 시간을 쪼개 공부한 경영철학과 미래 정보사회에 대한 구상을 어떻게 현실과 연결시킬지 그 연결해주는 고리를 찾으려 노력하는 모습이 강연 내내 이어졌다. 그 점은 박수 받을 만하고, 또 배울 점이 있지 않나 싶다. 인문사회과학자들이 다소 약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기에 더욱 그렇다.”? <재민, 7번째 과제>
“태터를 중심으로 다양성을 지향한 작고 알찬 흐름이 인터넷의 주변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획일화되는 현재인터넷의 흐름 속에서 다양성이 조금씩 싹트고 있다. 태터가 대장의 위치에 서서 진두지휘하고 있는 모습이 대견스럽다. 다만, 이른 흐름의 대장 위치에 있는 태터가 justice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도 마을을 꾸릴 수 있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사용하기에 좀 더 쉬워질 필요가 있다. Definition 세계 사람들은 모두 태터에 열광하지만, Justice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태터가 무엇인지도 사실 잘 모른다. Definition과 Justice 세계가 어울려 더욱 살기 좋은 마을들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해 본다” <진권, 7번째 과제>
?3. 여섯 개의 고리로 연결되는 세상 - 가지에서 즐겁게 놀기 시작한 아이들
티핑 포인트로 잡았던 노정석 대표의 강연 이후 학생들은 부쩍 성장해 있었다. 다음 강연자였던 오마이뉴스의 오연호 대표는 뒤를 이어 학생들이 집단 지성의 기반을 만들 수 있는 토대, 즉? ‘네트워크’들을 만드는 데 돈독한 역할을 해 주었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그가 어찌 보면 강연자 중에서 가장 우리에게 익숙했던 ‘인문학적 사유’의 세계 속에서 살아왔던 사람이었음에도 그 세계 안에만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정보사회에 뛰어들어 오마이뉴스라는 걸출한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어 낸 무용담(?)과, 조한이 계속 이야기해왔던 일머리 ― 스스로 기획을 하고 말을 만들어 내고 문제가 생기면 누구에게 찾아가 자문을 구해야 할지를 아는 능력 ― 를 갖춘 사람으로 느껴졌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이유가 있었는데(!) 오연호 대표는 마침 때맞춰 문을 연 강화도 ‘오마이 스쿨’에 학생들을 초청하면서 오프라인에서 서로 친목을 도모할 수 있는 ‘Membrship Training'의 기회까지 제공해주었다. 이런 과정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이번 장에서 ‘네트워크’, ‘친밀감’ 등의 키워드를 뽑아보았다.
우리에게 익숙한 관용어구였던 “세상 참 좁다” 라는 말을 실제로 증명해 낸 사람은 1998년 미국 코넬 대학의 스트로가츠와 콜롬비아 대학의 던컨 와츠라는 두 명의 수학자였다. 그들은 사회의 네트워크와 ‘예쁜 꼬마’이라는 학명을 지닌 선충의 신경네트워크, 또 인간이 설계한 송전망 구조와 하이퍼텍스트 링크로 연결된 웹페이지간의 네트워크 구조들이 거의 동일한 형태를 가진다는 것을 밝혀내었다.
이 개념을 우리의 수업에 적용시켜보면, 먼저 기존 연대생들만의 학점과 과제제출을 위한 ‘도구적’공간이었던 ‘와이섹’에서 벗어나 새롭게 경계를 확장했던 ‘가지’라는 사이트의 존재는 이런 네트워크들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온실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 사이트에서는? 매주 진행되는 강의 내용이 바로바로 업데이트 되었고(여기에는 누구나 수정하고 첨가할 수 있는 위키의 방식이 사용되었다), 과제로 제출하는 쪽글을 전체에게 공개하여 강의실의 연장선상에서의 학습 공간으로 작용했다. 뿐만 아니라 교실의 연장으로서 학습 공간일 뿐만 아니라 자유롭게 ‘수다’가 오고가는 ‘친밀성’(intimacy)을 나누는 공간이기도 하였다.
“ (..) 다른 수업에서도 이와 같은 방식을 도입했으면 좋겠다. 교수의 일방통행적 지식을 뼈빠지게 필기해 좋은 학점 받는 것도 물론 좋지만, 다른 학우들의 사고 체계를 통한 리플렉션들은 자신의 담론을 생산적으로 구조화 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준다. '양적 평가'의 압박에 '글 업뎃'만 지지부진하게 이루어지는 '와이섹 토론방'과 묘하게 대조를 이룬다. 흐흐...” <재민, 마지막 과제>?
“가지라는 공간도 특별했어요. 와이섹은 개인적으로 별로 안 좋아하고. 너무 닭장 같은 느낌이라서요, 거기서 즐거웠던 기억이 별로 없기도 하고 (..) 그런 것 때문에 소위 '가지 죽돌이'가 되었었고, 여기저기 참견도 많이 하고,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게 된 중요한 동기가 되었어요. 그래서 가지에게 고맙다는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메타스쿨도 이만큼 정을 붙일 수 있었음 좋겠는데...” <정석, 마지막 과제>
다음으로 이야기해 보고 싶은 것은 이 여섯 개의 고리로 연결되는 “작은 세계”의 개념에 ‘편향성’ 이라는 양념을 가미하여 어떻게 네트워크가 성장해 가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고 이는 물리학자 앨버트 라즐로 바라바시와 레카 앨버트의 “선호적 연결”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였다.
이 편향성과 선호적 연결의 개념은 ‘부익부 현상’으로 이해하면 쉬울 것 같은데 (사실 이는 월드와이드웹의 성장을 설명할 뿐만 아니라 모든 산업계의 패턴이기도 하다) 사회 네트워크에서 소문이나 정보가 유통되는 방식, 의견의 불일치로 인한 심리적 불안을 줄이려는 마음에서 의견 일치를 모색하는 경향을 ‘집단 사고(groupthink)'라고 정의한다면 커뮤니티 집단에서 지명도가 높은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을 부익부 메커니즘이라고 할 수 있고 이것은 ‘불평등주의적’ 네트워크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가지 사이트에서도 이런 ‘불평등주의적’ 네트워크의 특징을 드러내는 장치가 사실 작동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최다 추천글’이나 ‘최다 댓글’을 받은 과제들이 첫 화면에 등장하여 자연스럽게 조회수나 특정 글에 반응이 유도되게끔 연결되었던 홈페이지의 특성 등을 들 수 있다. 물론 이것이 ‘부익부 메커니즘’이나 ‘불평등’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어감 등에 반감을 느낄 사람들도 있겠지만, 우리는 이런 장치들이 위험성을 수반하면서도 인터넷 공간에서 전반적으로 ‘불필요한 정보들’에 대한 노이즈들을 막아주고 집단 지성을 만드는 데 ‘기능적’으로 작용하는 ‘필터링’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글이 아니라 친밀감을 형성하는 부분은 이와 다르게 동등한 노출과 링크가 확보되었다. (예컨대 가지 사이트에는 수강생 전원이 자신을 드러내는 사진을 공개하는 구조였는데 이 사진들이 첫 화면에 뜨는 방식은 랜덤으로 작동하였다) 아래 인용한 글들은 추천 기능이 학부생들에 어떻게 다가왔고 작동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글들이다.
“오마이스쿨 개교식에 갔다 와서, 인사할 수 있는 사람이 늘어났다는 것도 큰 수확이었고 (...) 특히, 쪽글을 쓰면서 동력을 많이 얻었다. 정성 들여서 쓴 글에 추천을 받을 수도 있었고, 조한과 여러 가지친구들이 댓 글을 많이 달아주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름 잘 썼다고 올린 글의 조회수가 낮으면 무기력해지기도 했었고. (..) 어찌 됐든 가지 친구들의 댓 글과 추천에 난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사람에도 정을 붙일 수 있었고, 쪽글 쓰면서 성취감도 느낄 수 있었으니 나름 성공한 케이스인건지도.” <시완, 마지막 과제>
?“어이쿠 한방 찔렸습니다..... 구구절절히 옳은 지적인지라 변명할 여지도 없음이 슬픕니다. 추천 한 방 날립니다.” <한솔의 댓글>
?“다음에 만들 이러한 성격의 싸이트에는 추천을 많이 한 사람에 대한 무언의 보상체계가 있어도 좋을 것 같아요. 예를 들면 개인 개시판을 만들어준다던가. 메인 사진을 선택할 권한을 준다던가 하는. 보상과 처벌을 생각하면 끔찍하지만 자연스럽게 추천하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도구가 필요하지 않을까”?? <류미, 9번째 과제>
마지막으로 이 편향성을 띈 ‘선호적 연결’의 네트워크에서 등장하는 것이 링크의 군집도가 높은 허브, 또는 수천 명의 친구와 지인을 거느린 ‘커넥터(connector)'의 개념이다. 커넥터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스타’의 개념보다는 덜 권력적이면서 수평적 느낌을 주는 개념인데 이 수업이 진행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는 평균 이상 수준의 글을 쓰거나 독특한 아이디어로 과제를 제출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커넥터가 되어가는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래 인용한 글을 보면 이런 특성들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어찌됐든 이런 ‘네트워크’ 특성에 기반을 둔 가지 사이트에 대한 일련의 분석을 살펴보면 학생들이 점차 참여군중이 되어가고 집단 지성을 만들어가는 기반을 갖춰나가고 있다는 점을 살펴볼 수 있을 것 같다.
“ (이 사이트에서 주도적 활동을 K군에 대하여) 쪽글을 쓸 때마다. 밤새 글을 수 없이 고쳐가며 방망이 깎던 노인의 장인정신을 보여준 K. 지계에 성골/진골/6두품 논란이 있을 때, 거의 진흥왕으로 군림했던 대마왕. 수업이 끝나기 전에 가지에 '감자군순수비'라도 하나 남기시지요. 이번학기 누구보다, 위트있고 박식하고 성찰적이며 세심하게 수업에 참여했던 가지의 제왕. 수업에서 다 풀지 못한 '여전히 이야기 되어야할' 실타래들을 같이 계속 풀어봅시다."? <진권의 댓글>
“매 주마다 좋은 글 감사했습니다. 강의 내용을 더듬을 때마다 L씨 글을 어떤 '중심점'으로 삼았다는 거, 고백할게요." <대현의 댓글>
4. ‘전염’과 ‘감염’이 일어나다 - ‘죽어 있는 관념에서 '생기 있는 지식’으로!
티핑포인트를 넘어서고 친밀감을 바탕으로 한 네트워크를 형성했던 과정을 거쳐, 드디어 학생들에게서 어떤 ‘집단지성’의 가능성을 포착하게 된 것은 강연의 마지막 순서였던 ‘온라인 학습생태계’ 발표에 대한 과제들을 통해서였다.
우리는 일련의 논의를 거쳐, 이 글들 속에서 링크로 구성된 지식의 네트워크들이 ‘감염’, 즉 수강생들이 어떤 ’아이디어 바이러스’를 만들어 내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여기에는 결코 ‘감염’이라는 개념이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는 설명도 덧붙인다)
서두에서도 밝혔지만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집단지성’이라고 이해할 수 있는, 일련의 사고의 성장과정들이 관찰되었기 때문이었다. 입시 논술을 통해 박제화 된 지식을 질서 있게 잘 나열하도록 훈련 받은 학생들은 수업을 들으면서 지식 발생 순간에 지녔던 강렬한 문제의식을 감지했지만 그것을 입체적으로 ‘맥락화’하는 것에 약한 모습을 보였다.? 수업 초반에 제출 된 과제들은 논지를 펼치는데 있어서 현실감 없는 평면적 서술에 머무르거나 자신의 생각은 드러나지 않은 채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개념을 정리하는 차원에 머무는 경향들이 두루 나타난데 비해, 시간이 지날수록 관념적 지식들이 참신한 연관성 속에서 생기나 돋아나기 시작했다. 학기 초반과 마지막의 글들을 잠시 비교하여 살펴보자.
“인터넷의 미래와 관련하여 결국 우리가 진정한 정보강국으로 가기위한 방향은 무엇일까. 21세기에 새롭게 도래한 지식, 정보사회에서 대한민국이 경쟁력 있는 국가로 세계 속에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인터넷 망의 보급을 늘리는 것이 현시점에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진정으로 우리가 정보화 1류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양적인 인터넷인프라 확산이 아닌 콘텐츠의 질적 향상을 통한 성장의 활로를 모색하여야 한다.” <S, 두 번째 과제>
"인터넷. 디지털. 벤처. 이제는 좀 시들어진 듯 들리는 이 토양은. 하지만 우리의 삶을 너무나 많이 바꿔버렸다. 우리는 디지털로 변하고, 웹으로 연결된 이 세상과 어떻게 하든 공존해야 한다. 청년실업 문제에 직면한 20대에게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대처할 여유가 없다. 그래서 우리 20대에는 '인큐베이팅' 작업이 필요하다. 우리 20대는 완성된 존재일 필요가 없다. 충분하면 충분한데로, 부족하면 부족한데로. 지금 우리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고, 함께 양극화된 후기근대사회를 벗어날 지혜를 만들어가야 한다.” <광철, 마지막 과제>
“난 지금의 대학생활에서 갈증을 느끼고 있었고 학점과 좋은 직장만 바라보고 달려가는 친구들을 따라 달리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다른 가치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은 하지만 주위를 둘러볼 때면 좌절하곤 했는데 특강시간을 통해서 새로운,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많은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정말로 그렇게 삶으로 살아내는 사람의 말에는 힘이 있음을 보았다.” <새롬, 마지막 과제>
우리는 학생들이 자신의 처지를 솔직히 인정하고 직시하고 그 바탕에서 서로 고민을 나눠보자고 제안하는 모습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이러한 글쓰기 변화 과정에서 어느 순간 그들이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난 ‘생기 있는 지식’ 그 자체를 만들어내고 있고, 이것이 다른 사람의 ‘지식’들과의 ‘선호적 연결망’들을 이뤄가며 집단 지성의 ‘허브’ 역할의 가능성을 비추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현상을 집단 지성의 ‘백신’이 내장된, ‘감염’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나아가 우리는 이번 수업을 통해 형성 된 ‘집단 지성’이 어떤 임계점, ‘티핑 포인트’에 다다르면서 ‘전염’하려는 조짐들도 볼 수 있었다. 이번 수업에서 활용한 사이트는 ‘온라인 학습 생태계 프로젝트’의 개발을 위한 테스트베드로써의 역할이 있었다. 또한 학생들은 네트워크 시대의 프로슈머로서 수동적인 학습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지식생산자로 역할을 요구 받았다. ‘동기유발’이 잘 이루어 질 때, 자발적이고 자기주도적인 학습이 가능할 텐데, 가지라는 사이트가 학습 공간이기 보다는 집단의식이 형성되는 영역sphere로 기능하면서 다양한 요소들이 학습으로 전이되는 계기가 된 듯하다. 온라인 학습 생태계에서 집단지성이 싹트는 것을 몸소 체험한 친구들은 프로젝트팀에 대해 아낌없는 찬사와 참여의지를 내보이기도 하였다.
“가지사이트. 이번 수업을 구성하는 것들 중에서 가장 칭찬을 받아야 할 것 같다. 생산성이 뭔지를 보여줬다고나 할까. 심혈을 기울여 매주 공개 쪽글을 써내려나간 학우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당신들의 '글빨'이 만들어낸 공유지식 내지는 집합지성은 지금껏 어디에서도 얻지 못 했던 싱싱한 성질의 것이었다. 프로슈머적 감수성을 얻어가는 게 이번 수업의 목표라면, 이 사이트에서의 작업 하나로 달성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다” <재민, 마지막 과제>
물론, 그렇다고 수업 구성원 모두가 이 ‘열풍’에 강력하게 전염 되었던 것은 아니다. 수업 초반부터 끝까지 자신을 ‘루저looser’라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고, 주류와 비주류가 공존했음을 여실히 드러내기도 하였다.
“웹팀의 4컷 발표에서, 가지 친구들이 주류와 비주류로 나뉘었다고 얘기했다. 장난스럽게 소주와 사이다 사진을 붙여놓고 웃음을 유발했지만, 수업 내내 가지 친구들이 이 문제 때문에 힘들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 그들은 스스로를 loser라고 규정하기도 하고, 답답해 미치겠다고 했고, 자신이 찌질하다고도 했다. 인터넷 시대의 참여, 공유, 개방을 논하는 수업에서, 모두가 함께 하는 느낌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기도 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시완 13번째 과제>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주류-비주류 현상들을 꼭 부정적으로만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보았다. ‘선호적 연결’이라는 부익부의 매커니즘과 연결 고리의 대부분을 몇 안 되는 요소들이 독점하는 ‘불평등주의적 네트워크’ 들의 특성은 앞서 언급했듯이 월드와이드웹의 성장을 가장 잘 드러내는 개념이며 네트워크가 어느 일정 단위 이상 성장할 때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현상이다. 하지만 이런 독점적 허브를 가진 네트워크의 약점은 ‘악성 바이러스의 침공’에? 속수무책이라는 치명적 약점도 아울러 갖고 있다. 이것은 집단 지성에서 벌어지는 집단 행동이 어떻게 한 순간에 파시즘적인 행동으로 변할 수 있는지에 대한 부분적인 답을 내려주는 개념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 과도한 친밀성이 결속력으로 이어져 강한 군집의 절멸로 나아가는 것을 막아주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약한 연결들이 힘이 발휘 할 때이다. 때문에 끊임없이 하나의 커뮤니티 안에서 비판과 이의를 제기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인정의 문화가 존재하는 한 그 사이트는 집단 지성의 ‘전염’이 일어날 수 있는 건강한 공간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5. 나가며 -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 나의 가슴을 울리는 것은 바로 당신!
수업을 시작할 때, Web 2.0을 위시한 ‘참여, 공유, 개방’의 인터넷은 그저 인터넷 문화를 설명하는 ‘생기 없는 관념’(inert ideas)8)에 불과했다. 그러나 수업이 진행되면서 자신의 입장을 인식하고. 추상적이고 평면적이던 관념들은 자신의 삶과 연결 되면서 점차 ‘날카로움’(cutting edge)을 지닌 살아있는 입체적인 관념으로 변화하였다. ‘생기 있는 지식’이 집단지성으로 선순환 되는 구조를 이루어 낸 것이라고 평가해도 무방하리라.
‘선호적 연결’(preferential attachmen)의 개념은 권력의 집중을 낳는 부익부 매커니즘이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조그맣게 시작한 네트워크가 성장하는 엔진이기도 하다.9) 연구자들이 허브와 커넥터들이 만들어 내는 ‘선호적 연결’이라는 개념에 주목했던 이유는 ‘집단지성’이 권력화 되는 사회적 의미 보다는 만들어지는 네트워크 구조를 들여다보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이 수업을 통해 종의 종말을 가져올지도 모르는 신자유주의의 위험에서 면역성을 가진 티핑 포인트 생성의 가능성을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한 학기가 흐른 지금, 학생들의 글에서 미미하게나 그 작은 불씨들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현재의 인터넷 공간이 다양하면서도 작은 마을들을 만들어나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이 관찰기는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다.
대박을 노린 IT벤처 열풍이 시들해진 2003년 이후, 더 이상 정부나 기업의 지원이 끊기면서 가나한 이들의 인터넷에서 실험도 크게 줄어들었다. 그리고 거대 시장이 장악해 버린 우리 사회는 젊은이들을 획일적 취업시장에 내몰면서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창조력에 기반한 새로움을 원한다. 다양한 실험과 시도들을 마련하는 인큐베이팅은 소홀한 채 이들에게서 어떻게 참신한 ‘지성’을 가꿔나가길 바란단 말인가?
서론에서 던진 3가지 질문을 다시 상기해본다. 그리고 끝내 대답하지 못한 하나의 질문을 떠올려 본다. “설령 작디작은 마을들에서 그들이 힘겹게 만들어냈던 소중한 씨앗과 결과물들을? 찾아낸다 할지라도 그들의 열정과 능력에 신뢰를 보내줄 수 있는 사회인가?”
인류가 지구상에 살아남은 것은
집단 지성(지혜)적이었기 때문이지
계산이 빨라서가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현자가 되고 싶은 것이지
영리한 원숭이가 되려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전과 같은 형태로 존속하기 어려운 글로컬 시대에
계속 그 틀 안에서 ‘인재’를 키우려 하고
‘도구적 합리성’을 바탕으로 한 연구를 계속한다면
위기에 처한 현 상황을 타개할 수가 없다.
현장에 참여하면서 그것을 위에서 조망해낼 수 있는 시선,
그 거리, 그 시선을 갖도록 노력하면 좋겠다.
성찰적이 된다는 것,
거리를 두고 본다는 것,
그것이 현 상황에서 벗어나는 중요한 걸음이다.
- 조한의 강의노트 중에서 -
[참고문헌]
마크 뷰캐넌, 「넥서스 : 여섯 개의 고리로 읽는 세상」, 강수정 역, 2003
화이트헤드,「교육의 목적」, 오영환 역, 궁리출판, 2004
말콤 글래드웰, 「티핑 포인트 - 작은 아이디어를 빅트렌드로 만드는」, 임옥희 옮김, 21세기북스, 2004
피에르 레비, 「집단지성 - 사이버공간의 인류학을 위하여」, 권수경 옮김, 문학과 지성사, 2002
하워드 라인골드, 「참여군중 - 휴대폰과 인터넷으로 무장한 새로운 군중」 이운경 옮김, 황금가지, 2003
오히라 겐, 「새로운 배려 -젊은 그들만의 코드」, 김인주 옮김, 소화출판사, 2003?
조한혜정 외, 「인터넷과 아시사의 문화연구」, 연세대학교 출판부, 2007